너무 오랫동안 지방 생활을 해 온터라, 서울에만 가면 문화생활을 원없이 하겠지. 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막상 상경을 하고 나니 문화생활의 의욕이 뚝 떨어졌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혼자 어디 가는건 영 쉽지 않더라. 역시 같이 갈 누군가가 있어야 문화생활도 하겠구나만 머릿속에 한가득 담으면서 살았다.

그러던 찰나에, 같이 문화생활을 다닐 사람이 생겼다.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를 하다가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하늘에서 본 지구>.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1시 도슨트 설명에 맞추어서 입장하려고 시간 맞춰 만나 밥을 먹고 매표소로 향했으나.

왜 사람이 없지. 표 안팔아?

당황하기는 우리 일행뿐만이 아니었던 듯, 아이 손을 잡고온 아줌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한참 당황하다가 발견한 시립미술관 입구의 안내. 1월 25일 수요일 임시 휴관합니다.

.........아..........맨날 그렇지 뭐...........어쩐지 잘 풀린다 했어.

그래서 본의 아니게 향하게 된 덕수궁 미술관. 누구 전시인지도, 어떤 전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그래 전시회 보자고 나왔으니까 뭐라도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전시회 관람을 하게 되었다. 하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응식 사진전. 이름도 잘 외워지지 않는 이 분은, 한국 사진작가 1세대라고 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의 근대화를 이룬 인물인 사진작가 임응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열렸다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예술 사진이나 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임스그램이라는 새로운 방법의 사진 기법을 사용하여 일찌감치 사진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한국 전쟁시에는 종군기자로서 활동을 하며 많은 사진을 남겼다. 이후에는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이나 기록 사진과 같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명동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수십년동안 많은 사진을 찍어 왔다고 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와 같이 사진가 L씨의 명동 일일이라는 주제로 임응식이 주로 다녔던 명동 코스를 지도와 사진으로 재구성한 전시 항목이 있었는데, 나에게 있어 이게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단지 전시회라는 것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와 관람자간의 소통이 아닌, 그 작가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하여 관람자에게 새로운 형태에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좋은 시도인것 같다.
아직 많은 사진전이나 미술전을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전시를 주관하는 큐레이터가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로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왠지 흔한 경우는 아니지 않나?

사진을 보다 보면, 나의 사진도 욕심이 난다. 더 잘 찍고 싶은, 더 특별한 사진을 찍고 싶은 열망. 그러나 막상 사진기를 들쳐 메고 밖에 나가면, 마땅한 피사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항상 불만이어왔다. 일상적인 사진, 특별할거 없는 사진을 찍어 뭐해. 하다가 이제는 내 사진기는 여행갈 떄가 아니면 장농속에서 잠자고 있다.

사진전 관람을 통해서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임응식의 사진들은 이런 일상적인 것들도 많았다. 거리의 그냥 평범한 풍경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흔한 명동의 가게들, 버스안에서 찍은 거리 모습. 아 전문 사진 작가들도 저런 일상적인 사진을 찍고, 그것들이 하나의 가치로 남는구나. 도슨트의 설명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이 사진 하나 하나가 얼마 안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시간에 내가 보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사진으로 남는다면, 그건 충분히 나에게, 혹은 내 가족이나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훌륭한 기록이 될 것이다.
전시회를 보고 나니 참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중에서 기억나는 사진이 딱 두가지 있다. 하나는 위 포스터에 들어 있는 '구직'이란 제목의 사진인데 이는 목에 걸린 한자를 내가 제대로 읽었기 때문에 조금 더 기억이 난다 하하. 구직자가 왠지 멋드러진 모습인데, 일자리를 구하는 그의 뒤에서 말쑥함 차림의 양복신사 둘이 악수하는 모습과 대비가 되어 더욱 강렬하게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나목'이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이전에 보았던 배병우 사진전에서와 같이 수묵화 느낌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진에서 왠지 다른 작품들보다 오랜 시간 눈길이 갔다. 사실 작품을 본다기 보다 저런 기법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더 컸던것 같다. 근데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1953년 부산 국제시장의 화재를 겪으면서 그렇게 희망이 불타버린 우리나라를 형상화 한 앙상한 나무를 통하여 절망과 좌절을 형상화 하였고, 거기 서 있는 한 아이를 통해서 새로운 새싹과 희망의 태동을 묘사한 작품. 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되지도 않은 작은 안목으로 작품 자체를 보지 않고 기법이나 따지고 있었다니, 예술 감상의 기본을 놓치고 있었다. 괜히 사진 몇장 찍어 보았다고 꼴에 기법이나 찾은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예술은 something special 한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 있다는 모든 삶의 부분들이 예술이 될 것이다. 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전시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처럼 시립미술관에 갔다가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이리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겠지? 하하 그래도 우연한 기회지만 좋은 전시를 보았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사진을 많이 보고, 많이 찎어보고, 그 사진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 멋진 사진을 찍어 보기 위해 나도 많은 셔터를 눌러 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설 연휴 내내 바빠서 회사를 나갔던 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휴식다운 휴식도 아니고, 매일 집에 와서는 픽픽 쓰러지기를 3일 내내. 연휴 다음날 하루 쉬면서, 리프레쉬를 할 여유를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다시 처음 상경할떄의 마음처럼 더 많은 문화생활을 누려 보자.

2012/01/25 23:10 2012/01/2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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